[사진=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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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안신희 기자] 먼저 이 영화의 한글 제목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원제를 그대로 한글 표기한 '쏘리 위 미스드 유'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리키의 비중이 크긴 해도 네 명의 가족을 평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공들이는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며, 곧 앞두고 있는 정식 개봉에서 부디 리키에게 치중해 '가장의 무게' 같은 타이틀을 달고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 뒤, 불안한 예감처럼 'Sorry we missed you'는 '미안해요 리키'가 되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가장'이라는 소개글과 함께 개봉했다.

첫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 영화가 리키에게 미안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리키에게'만' 미안한 영화가 아니다.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는 '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네요'라는 뜻으로 택배 기사인 리키가 부재중인 고객에게 남기는 메모의 내용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we)'가 놓친(missed) '당신(you)'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동자, 혹은 더 나아가면 과중된 노동에 부모를 빼앗겨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 가정의 자녀들까지도 포괄하는 의미라고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미안해요'의 대상을 '리키'로 특정하는 것은 영화가 하는 이야기를 제한하고 축소하는 행위다. 리키와 마찬가지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며 가정 내외의 돌봄까지 이중으로 떠안아야 하는 애비나,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자꾸만 더 가난해지는 부모를 보며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셉, 돌봄을 제공받아야 하는 어린 나이에 돌봄의 주체가 되어가는 라이자의 이야기는 변두리로 밀려난다. 그리고 몸이 실제로 군데군데 부서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까지 배달 일을 나가야만 하는 리키의 내몰린 상황이 '아빠의 애환'으로 납작하게 낭만화된다.

[사진=E1엔터테인먼트]

두번째로 지적할 점은 리키는 슬로건처럼 '넉넉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가장'이 아니라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자꾸 놓쳐가는 가장이라는 점이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명제와 '가난하면 행복하기 어렵다'는 명제는 양립이 가능하지만 매체에서 쉽게 왜곡되고 치우친다. 이 영화는 후자를 설명하는 영화인데 앞서 지적한 슬로건은 전자를 주장하고 있다. '넉넉하지 않지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은 가능하며 실존하겠지만, 리키의 가정은 가난과 과중한 노동의 악순환으로 기존의 행복까지 빠른 속도로 잃어가는 중이다. 한편 리키를 '가장'으로 읽는다면 그는 오히려 '실패한 가부장'의 전형이다. 건설 현장에서 지붕, 바닥, 도로포장, 배관에서 무덤 파기까지 안해본 일이 없을 만큼 열심히 사는 가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실업 수당을 받느니 굶는다며 자존심을 세우고 화를 못 이겨 아들을 때리기도 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의 권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가족을 부양할 능력은 부족하고, 이를 메꾸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되려 더 나쁜 결과를 맞이한다. 물론 그는 가족을 사랑하고 부양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예전의 아빠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라이자나 셉의 대사를 보면 상황이 보다 나았던 과거에는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예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꾸리고자 하는 리키의 시도는 반복적으로 좌절된다. 이로 인해 시나리오 작가인 폴 래버티가 밝힌 의도대로, 리키는 처음 가지고 있던 '조금만 고생하면 다 잘될 거라는 희망'을 점차 잃고 실패와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은퇴를 번복하면서까지 켄 로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기업이 정규직이 아닌 임시 계약직 채용을 선호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체제의 현실이다. 택배 노동자 일을 시작하는 리키에게 관리자 멀로니는 '각자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전사'만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기업은 노동자에게 '개인 사업자 가맹주'라는 이름을 씌움으로써 노조가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등의 노동권 보장을 피해간다.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계약직 노동자들은 개인 사업자이지만 과중한 책임과 벌칙에 시달리고, 개인 사업자이므로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복지를 제공받지 못한다. 배송 중에 2분 이상 멈춰있으면 안 되고, 일을 하루 쉬기 위해서는 직접 비용을 들여 대체 기사를 고용해야 한다. 작게는 주차 과태료에서부터 사고를 당해 망가진 제품과 배송용 기기까지 개인이 부담한다. 리키는 14시간씩 주 6일을, 식사는 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페트병을 들고 다니며 일하는데도 왜인지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사진=E1엔터테인먼트]
[사진=E1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또 다른 계약직 노동자이자 한편으론 리키보다 더 가정의 중심 역할을 하는 인물은 엄마인 애비다. 방문 요양사인 애비는 리키의 사업용 밴을 위해 차를 팔게 되고, 버스를 타고 중간중간 걸어서 곳곳에 위치한 일터를 찾아다닌다. 애비가 맺은 '제로 아워' 계약은 최저 임금 시간이 '0시간'인 계약으로, 고용주 측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노동자를 고용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체제다. '하루 최대 8시간 노동'이 무색하게, 제로 아워 계약을 한 애비는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한다. 일 사이 비는 시간과 이동 시간은 물론 근무 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고 교통비도 지급되지 않는다.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객을 '내 엄마처럼' 최선을 다해 돌본다는 애비의 원칙은 자주 그의 삶을 조금 더 고되게 만든다. 최선의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애비는 수당 없는 초과근무를 하고, 휴게시간도 고객의 편의를 위해 사용한다. 애비의 상냥함이 자주 부가적인 노동이 되어 그의 시간과 감정을 소모시킨다.

한편 애비는 가정 밖 직업으로서의 돌봄과 동시에 가정 내 주보호자로서의 돌봄까지 동시에 수행한다. 고객인 노인의 집에서 다른 노인의 집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사이에 딸 라이자와 아들 세브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직업으로서의 돌봄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무게와 강도의 돌봄이 가정에서도 요구된다. 애비는 문제를 일으키며 방황하는 셉에게도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며, 화를 이기지 못하는 리키와 셉을 달래는 중재자 역할까지 떠안는다.

애비가 집을 비우면 그가 맡던 보호자의 역할은 방황하는 셉을 건너 어린 라이자에게로 전가된다. 일터에서 환자를 깨우는 애비의 모습이, 다음 장면 셉을 깨우는 라이자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고된 일을 끝내고 돌아와 소파에 앉은 채로 잠든 리키와 애비를 깨우며 접시를 치우고 텔레비전을 끄는 인물도 라이자다. 오빠 셉의 방황이 용인되지 못하며 나머지 가족들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을 보고 자란 라이자는 웃자란 식물처럼 조숙하게 행동한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알게 모르게- 크고 작게 라이자에게 의지한다. 라이자는 가정 내에서 셉이 보다 편안하게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존재이고, 리키의 택배 일을 도움으로써 (노동 자체를 분담하기보다는) 심적인 부담과 긴장을 완화해주는 존재이다. 어린 라이자는 가정 내에서 바쁘게 다른 멤버들의 마음을 살피며 분위기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라이자에게 주어진 과도한 긴장상태는 영화 후반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진=E1엔터테인먼트]
[사진=E1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주요한 갈등의 원인으로 등장하는 셉은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이 가정에 결국 균열을 내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원래는 우등생이었다는 셉은 이제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않고 퇴학을 당할 위기까지 맞닥뜨린다. 그 원인은 '학자금 대출을 받기 싫어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셉의 대사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대학에 가더라도 결국 빚에 쫓기며 가난해지고, 계약직 노동자인 부모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계속해서 가난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셉은 방향을 잃은 상태다. 변해가는 위태로운 가정과 희망이 떠오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셉의 불안과 혼란은 학교를 빠지고 그래피티에 몰두하며 도둑질에까지 손을 대는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보호자인 애비와 리키는 셉을 걱정하지만 충분한 대화를 시도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셉이 리키에게 유독 사납게 대하는 건 반항심의 표출인 동시에 화가 난 상태로 읽힌다.

빡빡한 노동에 지친 리키의 분노는 발화점인 셉을 향하지만, 영화의 목표는 물론 셉을 '빌런'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셉의 방황이 불러일으키는 파장을 자세히 보여주는 건 셉을 원망하라는 지시가 아니라 가난한 계약직 노동자들이 몇 번의 실수나 방황 혹은 사고에 대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드러내려는 의도에 가깝다. 영화는 잔인할 만큼 이 가족이 순탄한 일상을 영위하도록 놓아두지 않고, 그들이 순간순간의 사고로 인해 비인간적인 값을 치러야만 하도록 이끈다. 삶의 모든 요소들이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몸을 사려야만 평범한 일상을 가까스로 영위할 수 있는 현실을 고발하듯이.

'Sorry we missed you'는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비판 영화인 동시에 관계와 사랑을 다룬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두 특성은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 가족 구성원 네 명이 서로 맺는 관계의 방식이 영화에서 노동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지점이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영화 속에서 가정 내 갈등의 원인이 되는 셉까지도 사실은 다친 리키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구성원 모두가 지키고 싶어하며 노력하는데도 자꾸 일그러져가는 이 가정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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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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