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약 900억 원·러닝타임 세 시간의 '맥시멀리즘' 무비
'과장성'과 '독립투쟁'의 상호작용…단단한 해피엔딩을 위해

영화 'RRR'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영화 'RRR'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문화뉴스 안신희 기자]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이하 'RRR')'는 확신의 '맥시멀리즘' 무비다. 모든 것이 과하다. 넉넉한 제작비(약 900억 원)와 러닝타임(187분)은 호랑이와 빔의 추격씬, 람과 빔이 호흡을 맞춰 아이를 구하는 씬, 파티에서 현란한 춤과 노래(일명 '나초송')를 선보이는 씬, 빔의 습격으로 총독 저택이 불길과 맹수들에 휩싸이는 씬 등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된다. 주인공인 람과 빔에게 부여되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정신력 또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뱀 독이 몸에 퍼지고, 오른쪽 가슴을 깊이 찔려 피를 토하면서도 금세 벌떡 일어나 싸운다. 난간과 건물을 손으로 부숴서 무기로 사용한다. 굵은 나무에 허리를 다 찔리고도 계속 싸운다. 감옥에서 일주일에 한 끼만 먹으면서도, 거기다 매를 맞고 독방에 갇히고도 어떻게든 계속 운동을 하며 이내 또 나가 싸운다. '주인공 보정'도 이 정도면 유별나다.

'RRR'에서 이러한 '과함'은 하나의 장르가 된다. 등장인물들이 뜬금없이 자꾸 춤을 추고 노래하는 장면들을 보며, 관객들은 이 영화를 '영화'보다는 일종의 '뮤지컬'에 가깝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영화적인 '자연스러움'보다 극적인 '과장'이 'RRR'에는 더 잘 맞는 옷이고, 단순한 서사로 인한 영화의 공백은 정신을 쏙 빼놓는 화려한 영상과 음악이 꽉 채운다. '저게 말이 되나?' 같은 의문 또한 영화의 당당한 태도 앞에 무의미해진다. 사건의 합리성이나 현실성이 여기서 그리 유효한 쟁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민지인의 투쟁과 전복'이라는 주제는 영화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중심이자, 영화의 과장성이나 비현실성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장치이다. 'RRR'이 제국주의 역사를 무대로 가져오면서, 상대를 절대악으로 상정해서 최대한 악랄하게 묘사한 뒤 통렬하게 복수하는 클리셰가 진부하기보다 통쾌해진다. 비현실적이더라도 주인공이 총알을 다 피했으면 좋겠고, 말도 안 되지만 단 둘이서라도 어떻게든 영국군을 모두 이겨줬으면 좋겠고, 실제 역사가 어떻든 일단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RRR'은 관객이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을 원하도록 극을 이끌고, 자극한 욕구를 충실하게 실현한다. 

짐짓 평화롭게 그려지는 영화의 첫 장면, 숲 속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고 그 중심에서 인도 부족 소녀 말리가 노래를 부르며 영국 총독 부인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 노랫소리는 아름답게 울려펴지고, 총독 부인은 아이의 솜씨를 온화한 미소로 지켜본다. 제국주의 시절이기는 하지만 선량하고 아량이 넓은 영국인과 '아름답고 순수한' '원주민 부족'의 모습은 미디어에서 그리 낯설지 않게 재현되어온 이미지다. 이후 등장하는 총독 저택의 넓고 아름다운 모습 또한 우리에게 익숙하다. '영국 귀족'이라고 하면 노예 제도나 제국주의 같은 것들보다는 화려한 저택과 파티, 드레스 같은 것들이 익숙하게 연상되곤 한다. 'RRR'은 그런 관습적인 이미지를 신속하게 부순다. 총독 부인은 '선반에 예쁘게 장식해두고 싶다'며 동전 두 잎을 던져주고 말리를 가족에게서 빼앗고, 파티가 한창이던 총독 저택은 빔의 습격으로 초토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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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RRR'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영화 'RRR'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납치된 소녀 말리의 이야기(The StoRy) - 인도인 경찰 람의 이야기(The FiRe) - '양을 되찾으려는 양치기' 빔의 이야기(The WateR)까지 장장 40여 분에 걸쳐 프롤로그가 끝나고서야 본 막이 올라간다. 본 막의 도입에서는 말리의 납치만큼이나 영화에서 핵심적인 사건인 람과 빔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각각 '불'과 '물'로 상징되며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사람은 실제 인도의 독립운동가인 '알루리 시타라마 라주'와 '코마람 빔'을 모티브로 한다. 신화적으로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신 '라마찬드라'와 '하누만'과 유사하다. 후반부 람이 사용하는 활과 화살은 라마찬드라의 것이고, 아내인 '시타'의 이름 또한 동일하다. 납치된 말리를 찾아가거나 총독 저택에 불을 지르는 빔의 행적은 신화 속 영웅 하누만을 떠올리게 한다. 활을 쏘는 라마찬드라를 하누만이 들어주는 신화 속 이미지는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다리를 다친 람이 빔의 어깨에 올라타고 활을 쏘는 장면과 겹쳐진다. 

영화 속에서 람과 빔은 위험에 처한 아이를 함께 구하고, 이를 계기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막역한 친구가 된다. 그러나 람이 몽타주까지 그려 찾아다니던 사람이 빔이라는 사실이 곧 밝혀지고, 빔이 우정으로 건넨 끈목걸이가 람이 빔을 알아보고 체포하는 데에 사용된다. 자신이 믿는 대의와 목표를 위해서 아끼는 친구를 체포해야 하는 상황에 람은 벽을 부수며 혼란스러워 하지만, 대의를 선택한다. 람의 대의는 인도인에게 무기를 지급하는 것이다. 가족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어린 람은 일차적으로는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이차적으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약속한다. 꼭 모두에게 무기를 지급하겠다고. 그것이 람이 믿는 해방의 방법이었다.

'RRR'에서 '무기'는 중요한 소재다. 가령 '총알'은 식민지 시절 인도인들을 대하는 제국주의 영국의 태도를 보여준다. 영국 군인은 인도인의 목숨보다 총알이 더 가치있다고 주장하며 총 대신 몽둥이로 사람을 죽인다. 반면 '화살'은 이에 저항하는 인도인의 투쟁을 상징한다. 초반부 영국의 장교 에드워드는 "그 부족 사람들이 화살을 쏴서 위대한 대영 제국을 무너뜨린다는 거냐"라고 비꼬는데, 해당 발언은 영화의 후반부에 활을 든 람이 화살을 사방으로 쏘아 영국군을 섬멸하며 실현된다.

무기를 지급하겠다는 대의를 위해 람은 앞에 있는 인도인에게 몽둥이를, 채찍을 휘두른다. 람에게 그들은 인도의 독립을 위한 '희생양'이다. 이런 생각은 빔의 노래를 통해 변화된다. 총독 저택을 습격한 죄로 모두의 앞에서 채찍질을 당해 몸이 곳곳이 찢어지는데도 무릎을 꿇지도 노래를 멈추지도 않는 빔의 모습을 보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무기도 없이 몸을 내던져 투쟁한다. 람의 표현처럼 빔의 노래로 '모두가 무기가 되'었고, 그렇다면 인도인에게 무기를 지급하겠다는 람의 목표는 이미 일정 부분 잠재적으로 완성된 계획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해방을 향한 람의 열망은 스스로 무기가 되는 방식으로 방향을 튼다. 인물들에게 부여된 역사적·신화적 캐릭터성과 초월적 신체능력이 그러한 방향성에 힘을 실어준다. 상술했듯 이 영화의 과장성을 '독립투쟁'이라는 소재가 용인해주었고, 그렇게 영화에 자리잡은 '과장성'이 다시 인물들의 독립투쟁을 실현시킨다. 그렇게 두 요소는 서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영화를 완성한다.



 
안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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