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소극장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지역 무용단과 협업하여 공연을 기획하는 대구문화장착소에서 앞으로 지역 예술인의 공연에 대한 열정을 [현장 기고]로 전달하기로 했다.

각 지역을 기반으로 예술문화발전에 노력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을 문화뉴스가 응원한다. <편집자 주>


글 : 대구문화창작소 김상우 / 사진=이재봉

여름의 탈은 쓴 봄, 지난 4월 9일 토요일의 밤. 역병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안정을 찾은 걸까, 평소보다 줄어든 빈자리를 둔 객석을 마주하고, 무대의 막이 올랐다.

봄만큼이나 생기 있는 단어, ‘젊음’을 간직한 대구의 댄스크루, 루카스크루의 첫 개인 공연. 대구문화창작소가 주최하는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그 스물일곱 번째 무대로 루카스크루의 <DOUBLE BILL>(안무 김민수) 공연이 퍼팩토리 소극장에서 열렸다.

 

루카스크루 '희煕喜希犧' 안무 김민수/ ⓒ이재봉
루카스크루 '희煕喜希犧' 안무 김민수/ ⓒ이재봉

희煕喜希犧 / 안무 김민수

공연명에 걸맞게 두 개의 무대를 갖춘 루카스크루의 첫 막은 의미심장한 피아노 선율, 그리고 동작의 정적과 함께 시작되었다. 제목과 무대의 시작이 조금 달랐지만, 지난달 있었던 전국안무드래프트전의 참가 작품과 동일한 무대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조금의 각색이 있었지만, 기본적인 틀과 지향점은 같아 보였다.

조용한 무대 위에서 스피커 대신 무용수의 목소리로 직접 깔아주던 음악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대체되었고, 단체로 겁에 질린 듯이 웅크렸던 모습이나 전쟁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총격음, 비명 등이 배제되어 있었다.

구석에서 상의를 머리에 올려놓고 웅크린 한 명의 남성과, 무대 위에 서서 멈춰있는 이들 사이로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한 남성의 모습이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멈춰있던 세 무용수가 일제히 합을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서, 혹은 그 앞, 뒤에서 예의 남성 무용수가 춤을 추며 무대를 누볐다.

괴로워하거나, 슬픔에 찬 얼굴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덤덤하게, 마치 일상처럼 기도하고 물을 마시며, 피폐해진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짓을 하는 모습들이 오히려 괴로움을 더 섬세히 표현해내며 전쟁으로 삶이 무너진 이들의 고통을 잘 와 닿게 했다.

담담함은 아무렇지 않음이 아니다. 비극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의 모습은 격렬함일지 모르지만, 비애가 절정에 달했을 때의 모습은 격렬함이 아닌, 순응. 마치 전염병에 의한 고통이 길어져 그 안에 순응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네 모습처럼.

 

루카스크루 '순환하는 빛' 안무 김민수 장민주 /  ⓒ이재봉
루카스크루 '순환하는 빛' 안무 김민수 장민주 / ⓒ이재봉

순환하는 빛 / 안무 김민수, 장민주

캐주얼하다. 젊다. 간결하다. 이 단어들의 나열만으로 글을 마쳐야 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게 만드는 무대였다. 시작을 알린 것은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덩그러니 앉은 남성.

그가 마이크를 들고 보여준 것은 내레이션이나 연기 같은 것이 아니라, 사회 ‘같은 것’이었다. 진짜 중간에 사회자가 올라온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연출. 심지어 일어로 말하는 그의 모습은 일본인 게스트가 공연의 축사를 맡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의 사회 아닌 사회 뒤에서는 그림이나 글자가 빼곡하게 들어있는 스케치북을 하나씩 들고서 종이를 넘기거나, 마이크를 든 무용수에게 장난을 치거나, 멀리 떨어져서 서 있는 등, 각자 개인행동을 하며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 분위기가 끝나고, 뒤이어 나온 것은 세 여성 무용수의 무대. 검은 무복으로 맞춰 입은 세 사람은 비트감이 있는 음악 위에서 느릿하고 유연하게, 그러다 리드미컬하면서도 화려하게. 돌고, 눕고, 휘젓고를 반복하며 현대적인 춤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멋진 춤으로 마무리되나 싶을 때, 다음은 남성 무용수 3인의 턴. 역시 검은 정장 느낌의 캐주얼 복장으로 맞춘 그들이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그들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동작이 커지려나 싶을 때,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악수를 한 채 빙빙 돌며 뭔가를 더 보여줄 듯 말 듯한 느슨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이내 동작의 크기와 무대의 영역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관객이 방심할 수 없는 밀고 당기기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앞서 퇴장했던 무용수들과의 만남. 마치 빈칸에 퍼즐을 끼워 맞춰 그림을 완성하듯, 그들의 만남은 고혹적인 무대의 완성을 알렸다.

절제된 카리스마를 보여주듯 화려하거나 절도 있는 동작보다 밀집된 몸짓들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펼쳐진 무대에서의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즐거운 동공의 방랑과는 또 다른 재미로 몰입감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의 독무대로 혹은 듀엣으로 호흡을 보여주더니, 빛과 어둠의 영역을 활용한 감각적이면서도 화려한 무대를 연출했다.

 

루카스크루 '순환하는 빛' 안무 김민수 장민주 / ⓒ이재봉
루카스크루 '순환하는 빛' 안무 김민수 장민주 / ⓒ이재봉

까만 바닥 위에 빛을 허락하는 영역은 단 세 군데. 출연진들은 한 명씩, 혹은 둘씩 그 빛의 영역에 뛰어들더니, 다시 어둠을 지나 서로를 교차하며 다른 영역으로 뛰어든다.

이 영역을 가로지르는 화려함이 끝나면, 이제는 다 함께 합을 맞춰, 앞서 언급한 확장된 화려함을 보여준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어디에 두어도 즐거운 시선의 방랑이 시작된다.

뛰어오르고, 돌고, 때로는 상대방의 몸에 의지해 들어 올려지고, 그러다 다시 한정된 영역에서 카리스마로 시선을 밀집시키고. 트렌디하고 현대적인 춤의 장관에 관객의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잡아먹힌다.

피날레. 일렬로 선 출연진들이 손을 잡는다. 몸을 숙인다. ‘이제 여기에서 인사를 하며 무대가 끝나겠구나.’ 틀렸다. 서로 손을 잡은 그들의 다음 행동은 인사가 아닌, 바닥에 드러눕기.

한참을 그렇게 누워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으니, 관객들은 눈치를 본다. ‘박수를 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어질 춤사위를 기다려야 할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들 손을 풀고 몸을 일으킨다. ‘역시 춤이 이어지는 걸까?’ 기다리고 있던 관객은 다시 갈팡질팡,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갈등하게 된다. 출연진들의 다음 행동은 정면으로 보고 앉아있기.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없이 앉아서 관객석을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다. 마치 무대와 객석이 뒤바뀐 듯 한 모습.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며 웃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관객 같지 않은가.

무대 위의 그들은 관객, 관객석의 우리가 출연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그들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관객을 당혹스러우면서도 즐겁게 만드는 연출이었다는 것.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젊은 감각, 젊은 연출이 피어오르는 무대로 보는 내내 봄 향기를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 외부 기고 및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요기사

관련기사

 
문화뉴스

독자와 공감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만들겠습니다.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