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감독 퇴임 후 라오스 야구 보급에 힘써

▲ 지난 해 청룡기 선수권대회에서 만난 이만수 감독. 그는 지금도 라오스의 야구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야구를 포함한 스포츠는 엄밀히 따지면, '문화'의 한 범주에 속한다. 여가 생활을 통하여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수단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 관람이다. 혹자는 영화를 보거나 콘서트를 갈 수도 있고, 때로는 텔레비전 시청이 문화생활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어내거나 경기를 시행하는 선수들은 넓은 의미에서 '콘텐츠 크리에이터(Content Creator)'인 셈이다.

바로 여기, 넓은 의미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남자가 있다. 한때는 프로야구 그라운드에서 최정상에 섰다가 지금은 라오스에서 야구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헐크' 이만수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문화뉴스 '야구 읽어주는 남자/야구 보여주는 남자(이하 '야읽남 야보남') 첫 번째 순서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필립 질레트(Pillip Gillett) 선교사는 국내에 처음으로 각종 스포츠를 보급한, '한국 근대체육의 아버지'라 볼 수 있다. 개화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국내를 다녀갔지만, 1901년 황성 YMCA 초대총무로 부임한 질레트는 '길례태(吉禮泰)'라는 한국이름까지 손수 지을 만큼 한국을 사랑하며 일제에 항거했던 민족주의자들을 도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1904년 YMCA 임시회관으로 사용중이던 인사동 태화관앞에서 미국병사들이 하던 캐치볼에 한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자 고향인 미국에 야구 용품을 주문하면서 국내에 처음으로 야구를 보급하기도 했다. 선교 수단의 일환으로 시작됐던 근대 스포츠의 도입이 벌써 112년 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 것이다.

이제 야구는 국내에서 '국민 스포츠'로 불릴 만큼 양적/질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고, 그 가운데 종주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야구 선진 3국 중 하나인 일본마저 넘어서며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가 그러했고, 2015 프리미어 12가 또 그러했다. 물론 지금도 아마야구를 비롯하여 야구 저변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야구 선진 3국(한국, 미국, 일본)'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야구는 이제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최국'의 입장에 서게 됐다. 앞서 미국이나 일본이 야구가 활성화되지 않은 '제3국'에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처럼, 대한민국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놓인 것이다. 실제로 허구연 MBC SPORTS+ 해설위원은 이러한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고 캄보디아에 야구를 보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헐크 이만수', 라오스의 질레트를 자청하다

그리고 지난 2014년 말, SK 와이번스는 이제까지 프로야구계의 관행과는 조금 먼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해까지 SK를 이끌었던 이만수 감독과의 계약이 만료되자 후임으로 김용희 감독을 선임하면서 '감독 이/취임식'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이나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될 이 모두 당황스러워할 법했지만, 두 이는 자연스럽게 감독직을 인수인계하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그렇게 'SK 왕조'를 여는 데 한 몫 했던 이만수는 프로에서 내려오면서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만수는 본인이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챌 때가지 걸린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을 뿐이었다.

야구계의 가장 빛나는 곳을 뒤로 하고 이만수가 선택한 일은 '재능기부'였다. 그것도 명문고와는 거리가 먼, 신생 고교냐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지방 학교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이만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전화를 받은 학교 관계자들은 '이만수 감독님께서 직접 오신다고요?' 라고 하며 놀라면서도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는 모습에 '역시 헐크답다!'라며 엄지를 치켜 올리기도 했다. 야구로 받은 사랑을 야구로 돌려주는, 지극히 이만수다운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모교 대구상원고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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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도중, 이만수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그 도전은 너무나 무모해 보였다. 아직 야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보급되지 않았다 해도 동남아시아쪽은 야구장은 커녕 운동할 수 있는 그라운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 많았다. 그 중 '라오스'는 세계지리 교과서에서나 이름을 볼 수 있었던,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였다. 바로 그 라오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SK 감독 시절, 시즌 준비가 한창이던 2013년 초에 이만수 감독은 한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된다.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해 달라.'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 담긴 메일이었다. 반 평생 야구를 하면서 라오스는 커녕, 동남아시아에 가 본 적 없던 이만수 감독은 그 이에게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 지 막막해했다. 그리고 시즌을 바로 코 앞에 둬 더 정신이 없던 4월, 이만수는 그 메일을 준 이에게 전화를 했다. 훗날 이만수는 "시즌이 개막하여 바빴을 텐데, 이상하게 라오스에서 온 메일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라며 향후 맺게 될 새로운 인연에 대한 묘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직접 라오스로 갈 수 없었던 이만수 감독은 사비 1천만 원을 들여 야구 용품을 사서 현지로 보냈다고 한다. 그것이 라오스 최초이자 유일의 야구단, '라오 브라더스'의 시작이었다.

▲ 이만수 감독을 따라 라오스 야구 보급에 나선 권영진 전 대구고 감독. 사진ⓒ이만수 감독 제공

이만수 감독이 직접 라오스로 건너 간 것은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한 달이 지나서였다. 야구 용품은 어느 정도 갖췄으나,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운동을 할 수 있는 '절대 공간'이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궁여책으로 마을 운동장을 돈 내고 빌려 바닥에 직접 선을 긋고, 베이스를 올려 경기를 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이만수 감독 혼자 해야 했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 질레트 선교사가 국내에 야구를 보급했을 때 그의 마음도 아마 이와 같지 않았을까.

이후 본격적으로 '라오스 야구 보급'에 앞장선 이만수 감독은 '헐크 재단(Hulk Foundation)' 설립을 필두로 라오스와의 MOU 계약 성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3월 6일에는 전 대구고교 권영진 감독을 라오스에 파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라오스의 질레트', 이만수의 도전은 이렇게 좋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헐크'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로 야구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누군가는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는 일이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에게 빵을 쥐어주는 일보다 하찮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대한민국 야구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야구를 전하고 지도하는 순간 순간, 어쩌면 야구가 빵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꼭 먹는 빵이 아니더라도 야구라면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고 죽어있던 그들의 꿈을 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누군가의 애끓는 도움으로부터 파생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지만, 선뜻 나서기는 힘든 도전에 자신을 기꺼이 내던진 이만수 감독. 라오스가 아시안게임 정식 경기에 나서며 '플레이 볼'을 듣게 되는 순간이 오기만을 기원해 본다.



 
김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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